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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자재 난장

엄마없는 서울이여~~ 아~안~녕~~

엄마없는 학창시절은 물없는 사막같았다.

중딩3년 고딩3년 대딩7년(군복무 3년포함) 내내

남들에겐 결코 꺼내지않는 고독감에 갇혀 지냈다.

 

남들은 기를 쓰고 무작정 상경을 시도하건만

나는 거꾸로 서울을 벗어나기로 결심을 한다.

 

고딩 동기동창 여학생 한 친구가 그런 나를 이해.

군부대 면회까지 와주어 아직도 고맙게 생각한다.

 

물론 일행이 있었기에 그 흔해빠진 청춘 남녀간의

운우지정은 나누지도 못하고 아쉬움만 간직하였스.

 

제대후 결혼은 각자 다른 사람들과 하고 말았지만

그 우정은 부부동반 모임에서도 이어져 내려온다.

 

학업과 군복무를 마치고 나는 드디어 서울을 떠난다.

 

그리고 얼마 안지나 언제예? 어데예? 말씨가 귀여운

대구처녀를 알게 되어 급속히 연인사이로 발전한다.

 

나는 결혼하더라도 장모되실 분부터 먼저 봐야겠단

생각을 비추자 어렵사리 그녀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나중에사 알고보니 딸만 여섯있는 딸부잣집 셋째딸..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고 꿩 대신에 닭이라고

친모의 빈자리 공백을 장모님께서 98% 채워주시긴

하였지만 뭔가 허전한 2%는 마눌女友님 몫이 된다.

 

그러고돌이켜보니 만났다 헤어진 여친들 대부분은

원하든 원치않았든 알게모르게 친정엄마부터 소개

하거나 소개받으면서 직간접적인 청문회를 했었네? ㅎ~ 

 

아마도 연애는 자유이상이요 결혼은 실질생활이라는

전혀 별개의 생각이 특히 어머니들에겐 많았으리라!!

그렇기도 하거니와 내가 간절히 바란것 역시 모정이었다.

 

그 복잡한 교통지옥 서울을 벗어나니 뭔가 마음 홀가분하고

엄마없는 콤플렉스도 이겨낼 수 있는 천군만마 응원군 획득. 

 

이거 뭐 회고록도 자서전도 아니건만...@@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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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8년 12월 12일 / 慧明草堂 발마

그 시시비비 시비월 시비일 36년 전 오늘 시비시비 총성이 울리던날

셋째딸 그녀와 나는 불안공포감 속에서도 둘만의 희망을 속삭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