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94세..
그 연세에도 정신 멀쩡하고
텃밭에 오이며 호박 고추 키워내
오고가는 사람마다 한봉지씩 쥐어주시더니..
내 아버지는 네형제중 막내..
첫째 큰백부님 밑으로 큰숙부 작은숙부
그리고 막내인 우리 아버지 네분 모두 조선과 대한제국
그리고 대한민국 역경과 고난의 근대사를 겪으신 어르신
왜늠들의 잔인무도한 침탈착취와 625동란시 북한 공산군들의
남측 젊은청년 납치연행에 이어 미군부대 주변의 문화적 충격.
하루도 마음 편할 날 없는 가운데 평생을 마음 졸이며 사시던
분들이었건만 그 마지막 증인으로 생존하였던 집안내 어르신중
그 셋째 작은숙모님을 끝으로 아버지뻘 항렬은 이제 모두 타계.
네형제중 둘째 큰숙부 셋째 작은 숙부 두분이 바로 전쟁중에
새댁이나 다름없는 처자식들을 남겨둔채 북으로 끌려가시곤
65여년의 세월이 넘아가도록 지금까지도 행방불명 생사불명.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라 얼굴도 모르지만 생존 목격자들의
생생한 체험 목격담 증언을 수시로 들어가면서 상상 추측만 할뿐.
KBS이산가족 상봉 신청때도 실오라기 흔적을 찾을 길 없었다.
소식불명 남편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젊은 생과부로
시아주버니(내겐 백부님) 집에서 먹는 눈칫밥 눈물밥이 어디
목구멍엔들 넘어갔으랴만 어린 두 남매(내게는 사촌남매)를
갖은 고생끝에 키워내시곤 결국 남편소식은 모른채 영면하셨네요.
집안 대대로 매장문화에 익숙해져있었으나
이번 셋째숙모님만큼은 화장후 유골함만을
얕게 매립하는 간소화 장례를 치렀다. 다만
조상들 묻혀있는 경기도 양주의 집안 선산
특히 백부모와 내부모 묻혀있는 기존
두 봉분 한가운데로 안치하였다.
막상 치러보니 화장이 매장보다 훨씬 간결명쾌.
과시형 허례허식 낭비도 없고 실속도 알차더라.
이번 장례를 치르고나서 가족회의 끝에
할아버지 큰아버지 내아버지 3기
기존 봉분들도 해체후 화장하여 가족들
수시방문 추모공원 잔디밭으로 꾸며보자는
제안에 사촌 당숙 재종질들 모두 잠정적 동의.
4~50년간 신경전만 벌이던 화장문화의 첫걸음 이제사 시작.
육촌 팔촌 십촌들은 그쪽 계열별로 별도 자율결정
따라오리라 믿고 종중계파들중 우리가 먼저 솔선수범
아마도 내 살아 생전에 반대를 무릅쓰고 화장을
시도한 첫사례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만큼 고루했던
어르신들 이제 다 돌아가셨으니 앞으론 화장문화가
슬슬 활성화되어 정착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나마
종중소유 선산땅이 있어 가능한 일이긴 하겠더라만..
일본군에게 끌려가 성노예로 갖은 고통을 당한 강제징용 소녀들..
공산군에게 남편을 잃어 가지가지 고생을 겪은 우리의 어머니들..
전쟁없을 그곳에서는 부디 평화와 안정의 삶을 누리시길 비나이다.
아울러 진정한 평화는 강력한 전쟁억제력 즉 정신무장력+경제력임을
통감절감하고 이번 남북간 평화(?)회담이 북한 세습집단을 무슨 공식
체제로 인정하는 혹시나 남북분단 고착화로 흐르지 않기를 기원_()_*
따라서 이런 열망을 무시한 채 가시적 성과위주에만 급급하여
국제적 시커먼스 거래 음모의 불나방으로 희생되느니 차라리
떳떳하고 당당하게 억류(피랍)된 북한주민 2천만명을 구출해내기 위한
전쟁중 담판이라고 각오하는 게 훨씬 더 높은 명분가치가 있지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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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51년 사월 스무사흘.
집안내 최초로 화장장례를 치르고나서
산골 사랑방 慧明草堂 / 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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